2018년 1월 20일 토요일 9:05 am

오늘 아침 눈을 뜨자 마자 갑자기 마음에 생기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별것도 아닌 일인데 이런 일에 왜 그렇게 불안해 할까를 생각해 보니 그 뿌리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 부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깨어서 마음을 지켜야 함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마음을 지킴은 하나님을 항해서 항상 마음이 열려 있음을 의미합니다.

토요일이지만 아침 일찍부터 학교에서 있는 Science Fair에 참여해야 하는 이진이를 데려다 주어야했기에 시간이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일단은 노트를 펴서 어젯 밤에 적었던 감사 리스트들을 읽어 보았습니다. 어젯 밤에는 급하게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서 잘 몰랐었는데 오늘 다시 읽어 보니까 정말로 감사할 이유들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았습니다.

1 오늘 (어제 금요일 저녁) 도 성경 공부를 인도할 수 있게 하심을 감사함

2. 조금씩 마음이 회복되게 하심을 감사

3. Joe (옛 직장 동료)가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고 위로를 하게 해 주심 감사

4. 하루를 잘 견디게 하심을 감사

5. 이진이와 대화 중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혜롭게 해결하게 하심 감사

6.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려는 마음을 주심을 감사

7. 어려운 가운데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기대가 생기게 하심 감사

8. 아주 심했던 알러지가 조금씩 나아지게 하심 감사

9. 저녁을 맛있게 먹게 하심 감사

10. 계속 어두웠던 혈색이 다시 좋아지게 하심 감사

11. 좋은 공동체를 주심 감사 – 성경 공부 모임에서 오래간만에 만나자마자 반가움의 허그를 해 주었던 두 자매들로 인해서 따뜻한 위로를 받게 해 주심 감사

12. 계속 살 소망을 주심을 감사

13. 아직까지 따뜻한 집과 먹을 것이 있게 하심 감사

14. 틈틈히 목마르지 않게 샘물을 주심 감사

15. 이 상황에서 계속 격려하시고 도움을 주시는 부모님이 계심을 감사

16. 아내가 더 이상 아픔으로 고통 받지 않음 감사

17. 눈물이 나도 그전처럼 고통스럽게 많이 아프지 않음 감사

18. 이 땅이 영원히 있을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 감사

19. 아내를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음이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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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9일 금요일 12:16 pm

평생 살아 오면서 그렇게 안해 왔기에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을 시작했습니다. 종이로 된 노트북에 손으로 많은 것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무엇을 쓰는 것은 초등학교때 “강제로” 쓰던 일기 말고는 거의 기억이 없는데 결국은 그렇게 싫어하는 것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 전에도 혼자만 보는 “신앙 일기” 같은 것을 가끔씩 컴퓨터에 적기는 했었지만 노트에 손으로 직접 그것도 매일 지속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정말 커다란 변화입니다.

그렇게 하기로 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기록해 두고 나중에 읽어 보고 다시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전화기나 컴퓨터에 써 두면 나중에 찾아 보기가 어렵지만 항상 가지고 다니는 노트는 언제든지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손으로 적을 때는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포맷을 정해 놓고 어제 하루 실행해 보았습니다. 먼저 아침에 큐티 시간과 기도 시간을 가지면서 생각나는 것들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 날 할일들을 적어 봅니다. 하루를 지내면서도 틈틈히 떠 오르는 생각들, 하나님께서 마음에 주시는 생각들을 지속적으로 적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직전 기도 시작을 가지면서 그 날 노트에 적은 것들을 다시 읽어 봅니다. 그리고 하루를 지내면서 감사했던 것들을 적어 봅니다. 어제는 10개 정도가 되었습니다.

어제 아침을 시작하면서 “광야를 지나면서 너무 목마르지 않게 오늘 하루를 마실 수 있는 물”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하루를 지나고 나서 밤에 생각해 보니까 하루 종일 너무 목이 말랐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어제 적은 노트 중 “감사할 리스트”를 다시 읽어 보면서 그 중의 하나가 어제의 생수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여러가지 방법으로 며칠 동안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같은 메세지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Be Still and Listen”이었습니다. 평상시 기도 시간에도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말하기만 하면서 막상 하나님께 조용히 귀 기울이는 훈련이 안 되어 있음을 며칠 전부터 느끼기 시작했었는데 오늘 아침 묵상하는 말씀에도 같은 메세지가 있어서 더욱 확신이 갔습니다. 그리고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쉽게 간과하던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주셨던 생수가 하나의 예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계속 일하고 계심”에 대해서도 아주 조금이나마 분별하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당분간 “조용히 들으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구분하는” 것에 촛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2018년 1월 18일 목요일 8:32 am

어제 저녁에 지난 몇 주동안 하나님께서 마음에 주신 생각들을 적어 보았습니다. 적어 놓고 보니 10 가지나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 리스트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갈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 하나씩 삶에 적용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나의 최선을 하나님께 드리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는다고 불평하면서 막상 저 자신은 그렇게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계속되는 불면증 때문에 아침 일찍 깨는 어려움이 있지만 오늘 아침에는 알람을 맞추어 놓고 억지로 몸을 일으켰습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를 하면서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만나”를 간구했습니다. 광야를 지나 가지만 정말 목이 말라 죽을 것 같을 때 마다 목을 축일 수 있는 샘물을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아무리 광야의 길이 힘들고 어려워도 같이 가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있으면 갈 수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루를 무기력하게 보내지 않기 위해서 오늘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오늘 하루를 이렇게 살고 밤이 되면 하루를 하나님과 함께 돌아 보고 내일은 또 내일 아침에 하나님께 여쭙고 살아 보려고 합니다.

 

2018년 1월 17일 수요일 2:06 pm

지식으로만 아는 신앙을 삶에서 직접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특히 저 같이 성격이 급한 사람에게는 더욱 더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또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계속 듣는 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기다리라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상황 가운데서도 계속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가 나의 신앙이 자라는 가장 좋은 기회라고. 광야의 시간을 잘 견뎌내고 나면 더욱 단단해 질 것이라고.

그러나 그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의 중간을 지나 갈 때에는 정말 답답합니다. 어쩌면 바로 코 앞에 터널의 끝이 있는지도 모르지만 막상 터널을 다 나가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니까요. 아내를 잃은 직후에 저를 완전히 사로 잡고 있었던 슬픔과 고통의 시간이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하니까 이제는 삶의 현실들이 저를 짖누릅니다. 당장 찾아야 하는 직장, 하루에도 몇번씩 찾아와서 괴롭히는 무기력감, 미래를 볼 수 없는 답답함. 그러면서도 예고 없이 갑자기 몰려 오는 그리움과 고독감 등…

삶 속에서 이런 터널들을 빠져 나왔을 때마다 하던 후회가 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하나님을 더 신뢰할 걸. 그러나 역시 같은 상황에 빠지면 여전히 같은 모습을 반복합니다. 어쩌면 이런 어려움들은 터널 가운데를 지나갈 때에도 전혀 흔들림 없이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야 멈추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더 아이러니인 것 같습니다.

 

2018년 1월 16일 화요일 (#2) 4:18 pm

제 블로그를 읽는 분들에게 최근에 같은 질문을 두 번이나 받았습니다. 왜 제 블로그의 글들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언급하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 질문을 하는 의도를 자세히 묻지 않았지만 이미 어떤 의도에서 질문을 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사실 그렇게 고백하는 저에게도 같은 의미의 질문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여러가지 질문들이 더 생깁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선하시다면 왜 내 아내를 데리고 가셨을까? 내 아내를 내 곁에 여전히 두셨다라면 하나님은 선하신 것이고 데리고 가시면 선하시지 않으신 것일까? 도대체 하나님의 선하심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당장 매일 매일 힘들게 살아가는 나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은 어떤 혜택을 주는 것일까?

마찬가지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내용은 다르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살아 가는 것 같습니다. 간절히 원하는 직장을 주셔야지, 내 외로움을 해결해 주셔야지, 내가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을 주셔야지, 내가 매일 겪는 어려움에서 나를 빨리 건져 내셔야지 하나님이 선하신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 때 흔히들 주는 모범답안처럼 주는 질문은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크신 뜻이 있기 때문이야”.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자신들이 겪는 문제들로 매일 고민하며 죽을 것 같은 고통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쉽게 한마디로 답을 주는 것은 너무 잔인한 것 같습니다. 남들이 들으면 하챦은 고민거리로 들릴런지는 몰라도 겪는 당사자들에게는 아주 심각한 매일 매일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미 머리로는 답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아내가 떠나고 난 후 이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과 매일 씨름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당장 처해있는 상황 속”의 하나님께서는 전혀 선하시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알고 있던 말씀들을 다시 묵상해 보면서 그 답을 다시 찾아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때 제 입으로 경험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고백한 분명한 기억이 있기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도적으로 계속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그렇게 보이지 않더라도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신데 그 아버지께서 제 삶속에서 허락하시고 행하시는 그 어떤 일도 저에게 악한 의도로 하실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저에게 분명히 말씀해 주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저와 제 아내가 서로를 사랑한 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저희 둘을 깊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쉽게 받아 들여지지 않는 이 상황을 하나님의 눈으로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계속 기도합니다. 또한 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저에게 여전히 선하게 대하고 계신 일들을 하나 하나씩 찾아 보면서 감사를 드립니다. 사실 감사할 일들을 찾아 보니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모든 어려움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 땅에서의 삶과 상관 없이 저에게서 절대로 빼앗아 갈 수 없는 천국 소망에 대해서도 계속 묵상하고 있습니다.그리고 하나님께 계속 구하고 있습니다.

9 .너희 가운데서 아들이 빵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으며, 10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해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하늘에 계신 너희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마태복음 7:9-11)

 

 

2018년 1월 16일 화요일 11:14 am

겨울 방학을 마치고 이영이는 어젯밤 11시 쯤에 학교로 돌아 갔습니다. 이진이와 함께 이영이의 짐을 실어 주면서 약간 기분이 우울해짐을 느꼈습니다. 그 전 같으면 아내와 함께 아들을 전송하면서 온 식구가 함께 허그를 했을텐데 어제는 세 남자끼리의 허그였기 때문입니다.

큰 아들을 보내고 텅빈 집으로 이진이와 둘이 들어 오면서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진이에게 기분이 어떻냐고 물으니까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합니다. 이영이를 보내기 전에 함께 셋이 나가서 함께 저녁을 먹을 때도 둘이 서로 신나게 이야기를 하는 동안 저는 말 없이 고기를 굽고 있었습니다. 그 전 같으면 아들들이 서로 이야기하는 동안 저는 옆에 앉아 있는 아내와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텐데 라는 생각을 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습니다.

연휴인지라 이진이도 긴 시간을 집에 있다가 오늘 드디어 학교에 가고 나니까 정말 집이 텅 빈 느낌이 들었습니다. 밤새 잠도 충분히 못 잔 탓도 있고 집 안의 적막함을 느끼기 싫어서 일부러 한참을 침대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서 아침을 먹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또 다시 현실이 무섭게 몰려 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직장을 찾아야 하고 혼자가 되었다라는 현실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는 (어쩌면 겉 모습만 그런 것일수도 있지만) 두 아들의 밝은 모습과 문득 문득 제 얼굴에 묻어 나는 어두움이 종종 슬픈 대조를 이룹니다.

그러나 마음이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기에 다시 마음을 추스리려고 합니다. 그 동안 마음이 무너질 때마다 스스로에게 다짐하던 말들을 다시 되새겨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주신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이므로 예외없이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진다”

“이 땅이 우리가 영원히 거할 곳이 아니라는 것은 정말 다행이다. 항상 시선은 천국에 두자”

“어두움이 짙어 질수록 새벽이 가까와 왔다는 뜻이다”

“오라고 하시는 그 날까지 이 땅에서 부끄러움 없이 열심히 살다 가자”

“연약함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다만 나의 삶에서 하나님이 필요하심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2018년 1월 14일 일요일 8:51 pm

오늘은 아내가 떠난지 딱 2 달이 되는 날입니다. 지금도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합니다. 결국 그렇게 아내를 데리고 가실 것이었으면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받았던 수많은 치료와 항암약들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병원에서 받은 약들은 다 버렸지만 아직도 항암 효과가 있다고 해서 사 두었던 온갖 영양 보조제들이 가끔씩 이곳 저곳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눈에 띌 때마다 깊은 회한에 잠기고는 합니다.

물론 2년의 시간이 완전히 낭비였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진이의 말도 자신이 살아온 평생 중 (이제 곧 16살이 됩니다) 지난 2년 동안 엄마와 가장 가깝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비록 몸도 마음도 많이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귀한 시간이었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아내를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시간이었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께 답을 구하던 질문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사랑하는 아내를 왜 꼭 데리고 가셨어야만 했었냐고 하나님께 계속 묻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그렇게 소중했던 아내를 데리고 가셨으니 앞으로 혼자서 살아가야 할 저를 하나님께서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다는 확신이 있어야 저는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교회에 가는 길 차 안에서 하나님께서 갑자기 대답을 해 주셨습니다. “너희 둘이 서로를 사랑한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내가 너희 둘을 사랑한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래서 내가 네 아내를 데리고 갔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음 속으로 들은 음성임에도 아주 분명하게 그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렴풋이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았지만 완전히 이해는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이 저에게는 커다란 위로가 되었습니다.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와 그리고 혼자 남겨진 저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동시에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앞으로 시간을 두고 그 뜻을 계속 생각해 보아야겠지만 제 마음이 치유되는 또 다른 전환점이 될 것 같습니다.